[여행스케치] 당일치기 고흥 팔영산 8봉, 4시간 암릉 끝 다도해 절경
[여행스케치] 당일치기 고흥 팔영산 8봉, 4시간 암릉 끝 다도해 절경
  • 조용식 기자
  • 승인 2026.04.10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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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찰 능가사 출발, 유영봉서 마주한 다도해
- 네 발로 기어오른 6봉 두류봉, 팔봉산 암벽의 묘미
- 하산 후 만난 삼겹살 백반, 완벽한 당일치기 완성
전남 고흥 팔영산의 봉우리 아래로 광활하게 펼쳐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사진=조용식 기자

[파이낸셜리뷰 조용식 기자] 전남 고흥 팔영산(최고봉 깃대봉 608m)이 봄 산행 코스로 등산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8개의 험준한 암봉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 팔영산은 정상부에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탁 트인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산행지다. 

주말을 이용하여 이곳을 찾고자 하는 수도권 등산객들을 위해 서울 출발 당일치기 산행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직접 확인에 나섰다. 주말이자 한식날인 지난 5일, 오전 7시 10분 서울 교대역을 출발한 일행은 고속도로를 달려 두 곳의 휴게소를 거친 뒤 오전 11시 30분경 팔영산 분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남녘의 봄기운을 천천히 음미하며 자연의 시계에 걸음을 맞추는 여정의 시작이다. 

벚꽃 흩날리는 능가사 돌담길, 느리게 걷는 봄

탐방로 입구로 향하는 길목, 천년고찰 능가사가 가장 먼저 일행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입구에는 '팔영산 능가사(八影山 楞伽寺)'라 선명하게 새겨진 거대한 표지석이 잎을 다 떨군 거목과 나란히 서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팔영산 능가사 입구. /사진=조용식 기자
천년고찰 능가사의 아름다운 벚꽃나무 군락이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사찰 돌담에 피어난 수선화. /사진=조용식 기자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된 천왕문(天王門)을 지나 사찰 경내로 들어서면, 417년 신라 시대에 창건된 보현사를 전신으로 하는 이 고찰의 고풍스러운 자태가 온전히 드러난다.

너른 마당 한가운데 자리 잡은 대웅전은 팔영산의 푸른 산세를 병풍 삼아 웅장하게 서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기와지붕과 정교한 단청무늬는 천년고찰의 위엄을 묵묵히 증명한다. 

그 곁으로는 화려한 문양으로 채색된 누각 아래 거대한 범종이 매달려 있고, 한편에는 사찰의 역사를 품은 옛 스님들의 사리탑인 부도(浮屠)와 사적비가 낮은 돌담과 철제 울타리 안에 단정하게 모여 있어 숙연함을 더한다.

경내를 둘러보고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기와 얹힌 돌담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그 담장 위로 수령을 가늠하기 힘든 거대한 벚나무들이 연분홍 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며 꽃비를 뿌리고 있다. 

능가사 돌담 주변으로 떨어진 벚꽃잎. /사진=조용식 기자
능가사 방문 당시 만개한 벚꽃. /사진=조용식 기자

붉은 열매를 품은 짙푸른 잎사귀와 화사한 벚꽃이 대비를 이루며 봄의 색채를 완성한다. 낮게 쌓인 돌담을 따라 벚꽃잎이 내려앉은 길섶을 찬찬히 눈에 담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탐방로 입구를 알리는 뾰족한 표지석들 주변으로 솜털을 머금은 할미꽃이 고개를 숙인 채 소박한 봄 인사를 건넨다. 이토록 서정적인 풍경 앞에서는 누구라도 쫓기듯 걷던 걸음을 늦추고 사찰의 평온함과 자연이 빚어낸 생명력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숨 가쁜 돌계단 끝에 마주한 1봉 유영봉 절경

본격적인 탐방로로 들어서자,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연초록 잎사귀들이 하늘을 덮으며 숲의 터널을 이룬다. 갓 피어난 새순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내음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고, 기암괴석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맑은 계곡물 소리는 걷는 내내 훌륭한 배경음악이 되어준다. 

고흥 팔영산의 8개 봉우리를 표시석으로 만들어 놓은 탐방로 입구. /사진=조용식 기자
탐방로 입구의 할미꽃. /사진=조용식 기자
봄의 기운이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는 탐방로. /사진=조용식 기자

숲길 중간에 놓인 넓적한 징검다리 앞에서는 조심스레 돌을 디디며 물의 흐름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출발 후 20여 분이 지나 마주한 해발 221m 지점의 다목적 위치표지판(팔영 47-01)마저도 각박한 경고가 아닌, 길을 잃지 않게 보듬어주는 든든한 길잡이처럼 다가온다. 부드러운 흙길을 밟으며 산행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자연과의 온전한 교감임을 체감한다.

초입의 숲길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높이자 투박한 돌계단이 시작된다.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거대한 흔들바위가 나타났다. 일행은 바위 옆 정자에 앉아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짧은 휴식을 취했다. 이곳에서 팔영산 제1봉인 유영봉까지는 단 0.6km. 나무 계단을 따라 10여 분을 더 오르니 이번에는 유영봉까지 0.4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묵언의 독려를 보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이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나무 사이로 언뜻 비치는 푸른 다도해의 물결이 위안을 준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징검다리를 건너는 일행들. /사진=조용식 기자
흔들바위 바로 옆에 정자와 벤치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제1봉인 유영봉과 그 아래 펼쳐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모습. /사진=조용식 기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침내 도달한 제1봉 유영봉(해발 491m)은 그야말로 완벽한 포토존이다. 너른 암반으로 이루어진 유영봉은 사방이 거칠 것 없이 탁 트여 있어 어느 각도에서 셔터를 눌러도 수묵화 같은 절경이 담긴다. 고흥의 너른 들판과 짙푸른 남해 바다, 그리고 섬들이 어우러진 풍광은 오르막에서 흘린 땀방울을 한순간에 증발시킨다.

지옥 계단과 암릉의 변주, 아찔한 6봉의 묘미

1봉에서 장엄한 경관을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드론을 띄웠으나, 겹겹이 솟은 거대한 암봉들에 전파가 막혀 신호가 끊어지는 예기치 못한 소동이 벌어졌다. 기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일행은 1봉의 여유를 서둘러 접어두고 제2봉 성주봉(해발 538m)을 향해 내달렸다. 

팔영산의 암릉이 시작되는 구간. /사진=조용식 기자
제3봉 생황봉 정상 표지석. /사진=조용식 기자
제4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에는 나무 계단과 거친 암릉이 있다. /사진=조용식 기자

1봉에서 2봉으로 넘어가는 구간은 끝을 알 수 없는 가파른 계단이 버티고 있어 등산객들 사이에서 이른바 '지옥 계단'으로 불린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고된 오르막이지만, 다행히 산행 초기라 다리의 근력이 충분히 남아 있었으며, 드론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해져 단숨에 계단을 치고 오를 수 있었다. 간신히 신호를 잡히면서 2봉의 굽이치는 능선을 렌즈에 담아낸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제3봉 생황봉(해발 564m)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봉으로 향하는 길목은 팔영산 특유의 암릉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제4봉 사자봉(해발 578m)으로 이어지는 구간 역시 가파른 나무 계단과 거친 바위가 번갈아 나타나며 등산객의 호흡을 시험한다. 

하지만 봉우리 사이의 거리가 짧아 시각적인 위압감에 비하면 수월하게 닿을 수 있다. 이어지는 제5봉 오로봉(해발 579m) 구간은 두 발로 걷는 것을 넘어 두 손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해 바위를 타야 하는 진정한 등반의 묘미를 선사한다. 거친 암벽의 촉감을 느끼며 산을 타는 쾌감이 팽팽해진 근육을 타고 전해지며, 10여 분의 짧은 사투 끝에 5봉 정상에 안착하게 된다.

거친 암벽을 오르 내리기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해 쇠로 만든 원형 손잡이가 이색적이다. /사진=조용식 기자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면 직선에 가까운 암릉이 나오는 제6봉인 두류봉. /사진=조용식 기자
전남 고흥 팔영산의 8봉 중 제일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제6봉과 그 아래로 광활하게 펼쳐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보인다. /사진=조용식 기자
제7봉과 제8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보인다. /사진=조용식 기자

이번 산행의 최대 고비이자 하이라이트는 단연 제6봉 두류봉(해발 596m)으로 향하는 길이다. 초입에는 능선을 따라 계단을 오르며 비교적 순조롭게 고도를 높이지만, 이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에 불과하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몸이 뒤로 쏠릴 듯한 수직에 가까운 암벽이 등산객의 앞을 거대한 장벽처럼 가로막는다.

장갑을 낀 손으로 철제 난간과 바위틈에 박힌 쇠고리를 생명줄처럼 부여잡지 않고서는 결코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극한의 험지다. 하지만, 6봉 정상에 서면 왜 이곳을 사실상 팔영산 경관의 최고봉이라 칭하는지 단번에 깨닫게 된다. 발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비현실적인 해안선과 앞으로 뻗어 나간 7, 8봉의 압도적인 자태가 거친 숨을 내쉬는 등산객에게 맹렬한 정복감을 안겨준다.

푸짐한 삼겹살 백반으로 완성한 당일치기 산행

6봉에서의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사이, 일행들은 제7봉 칠성봉(해발 598m)과 제8봉 적취봉(해발 591m)을 차례로 넘어섰다. 눈으로 가늠하는 것보다 능선이 훨씬 길게 이어져 있어 막바지에는 지구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기자는 6봉에서 탑재 방향의 길로 하산하는 코스를 답사했기 때문에 7봉과 8봉, 그리고 깃대봉을 탐방하진 못했다.

제7봉 정상 표지석. /사진=조용식 기자
제6봉에서 바라본 깃대봉. /사진=조용식 기자

마침내 당도한 팔영산의 최고봉 깃대봉(해발 608m) 정상은 얽혀있는 전깃줄과 통신 안테나가 시야를 덮고 있어 풍경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하지만 8개의 험준한 암봉을 모두 딛고 일어섰다는 강렬한 성취감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워주었다고.

아찔한 바위를 등지고 다시 푹신한 흙길을 밟으며 걷는 탑재 하산 코스는 생각보다 아득하게 길었다. 산행의 여운을 곱씹으며 천천히 고도를 낮춰 출발지였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 

고흥 유성기사식당의 삼겹살 백반. /사진=조용식 기자
제철에 맞게 나오는 반찬들이 푸짐하다. /사진=조용식 기자

무사히 일정을 마친 일행은 극한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점암면의 유성기사식당으로 향했다. 넉넉한 남도의 밑반찬과 뜨거운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 백반은 주린 배를 채우고 몸의 뻐근한 피로를 완벽하게 녹여주었다.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 고속도로 정체를 뚫어내며 서울 교대역으로 돌아오니 밤 11시였다. 조금 이른 시간에 출발한다면, 서울 도착 시간이 그만큼 단축되었을 것이다. 

느린 호흡으로 숲을 걷고 험난한 바위를 넘나들었던 팔영산 산행. 철저한 체력 안배와 시간 계획만 뒷받침된다면, 다도해의 절경과 남도의 미식까지 온전히 누리는 서울 출발 당일치기 산행은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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