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야 보이는 것들] 6. 마음이 보내는 경고, 몸이 먼저 안다
[퇴직 후에야 보이는 것들] 6. 마음이 보내는 경고, 몸이 먼저 안다
  • 김 식 수필가
  • 승인 2026.06.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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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식 수필가

[파이낸셜리뷰] 대기업에서의 홍보맨 생활 10년 차. 언뜻 보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안정된 회사, 괜찮은 연봉, 적당히 잘리는 일 없을 정도의 성과. 그러나 정작 내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매일 아침 기계처럼 일어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에서의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마음이 점점 굳어졌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거리감이 생겼다.

​회의실에 앉아 멍하니 상사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내 존재가 허공을 떠도는 듯했다. 일에 몰입하지 못했고, 무기력한 감정이 하루 종일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 무게는 어느새 몸으로도 나타났다. 두통, 속쓰림, 어깨 결림, 잦은 감기…. 병원을 찾았지만 뚜렷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스트레스성 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엔 ‘내가 약해졌나’ 싶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 마음이 먼저 아팠다는 사실을. 눈앞 당장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잊으려 폭음을 하며 억지로 웃으며 살아왔지만, 내면은 이미 탈진해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리면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것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 날 새벽, 속을 철사로 내리 긁듯이 쓰렸다. 온몸에 식은땀이 났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신경성 위염이었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나를 학대하듯 혹사시킨 삶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몸은 결국 마음의 거울이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줄 몰랐던 나는, 몸을 아프게 만들어서야 겨우 멈춰 섰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경고였고, 동시에 ‘이제 좀 쉬어도 된다’는 위로였다.

​그날 이후 나는 연차휴가를 하나도 남김없이 휴식을 위해 사용했고,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다. ‘남들 다 참고 사는데 너만 유난 떠느냐’는 말이 들릴까 봐.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나는 남의 시선보다 내 삶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안타까웠다.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분 걷는 것도 힘들었다. 심장은 여전히 두려움에 민감했고, 불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땀이 나고 햇빛을 얼굴에 받으며 걸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도 따라 움직였고,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정리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편안했다. ‘이제는 쉴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억지로 버티고 있던 삶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꿈꿔왔던 책 읽기와 글쓰기, 자연 속을 걷는 시간들. 하나하나 시작해보니 매일이 새롭고, 생기가 돌았다. 돈은 줄었지만, 웃음은 늘었다.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다.

​지금 나는, 이전보다 훨씬 행복하다. 몸도 많이 회복되었고, 무엇보다 마음이 가볍다. 더 이상 억지로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권고사직은 나에게 위기가 아니라 선물이었다. 잃은 줄 알았던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삶을 되찾았다.

김 식 수필가 약력

現 칼럼니스트 활동
2011년 산문집 <난향 바라기> 출간
2007~2018년 건설 홍보실 근무
2004년 <시사문단> 수필 등단
1996~2007년 신문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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