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야 보이는 것들] 26. 50대, 내 몸이나 내가 잘 모른다
[퇴직 후에야 보이는 것들] 26. 50대, 내 몸이나 내가 잘 모른다
  • 김 식 수필가
  • 승인 2026.10.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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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식 수필가

[파이낸셜리뷰] 50대에 들어서면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다. 예전에는 밤새워 일을 하고도 아침에 멀쩡히 일어나 출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한두 시간만 늦게 자도 다음 날 하루 종일 피로가 가시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두통이나 소화불량이 며칠이고 이어지고, 작은 감기에도 회복하는 데 시간이 배 이상 걸린다. 병원에 가면 ‘노화 과정’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 낯선 몸의 반응에 당황하기 마련이다.​

몸은 분명 내 안에 있는데, 정작 나는 내 몸을 잘 알지 못한다. 언제부터 고혈압 약을 먹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는지조차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회사 다닐 때는 늘 일이 우선이었기에 내 몸의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고 살았다. 술자리에서 소화가 잘 안 되어도 그냥 체했겠거니 했고, 가슴이 두근거리면 피곤해서 그렇다고 합리화했다. 결국 몸은 쌓이고 쌓인 피로와 불균형을 작은 경고음으로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그 경고를 알아듣지 못한 채 달리기만 했던 것이다.​

50대 후반에 들어서니 비로소 몸이 낯설어졌다. 계단 몇 층을 오르는 것만으로 다리가 후덜거리며 숨이 차오르고, 예전엔 즐기던 음식이 이제는 부담이 된다. 마치 내 몸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 듯 낯설고도 서운한 기분이 든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낯섦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순간, 내 몸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50대는 어쩌면 내 몸을 다시 공부해야 하는 시기다. 그동안은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했던 몸의 작은 반응들을 이제는 일일이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몸 상태, 운동 후 회복 속도, 음식 섭취 후의 컨디션까지 꼼꼼히 살펴야만 한다. 마치 내 몸을 낯선 나라로 여행하듯, 지도도 통역도 없이 길을 찾아가는 과정 같다.

​나 역시 회사를 나온 뒤에야 본격적으로 내 몸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매일 아침 혈압을 재고,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체크하며, 하루에 걸은 걸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번거롭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내 몸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정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해지고, 잠을 서너 시간밖에 못 자면 바로 다음 날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런 기록을 쌓다 보니 비로소 ‘내 몸이 이런 방식으로 반응하는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몸을 다시 배우는 과정은 단순히 건강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내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예전에는 회사의 성과와 상사의 평가에 내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었다면 이제는 내 몸의 상태가 하루를 좌우한다. 가벼운 운동으로 땀을 흘린 날은 마음까지 개운하고, 충분히 쉰 날은 사소한 일에도 웃음이 난다. 반대로 피곤이 누적되면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몸이 불편하면 인간관계마저 소원해진다. 결국 몸을 알아가는 일은 곧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다.

​회사라는 조직이라는 커다란 울타리에서 벗어난 지금, 나는 몸을 통해 내 삶을 새로이 꾸려가고 있다. 예전에는 ‘건강은 중요하다’는 말을 머리로만 알았다면 지금은 몸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몸이 곧 나의 집이고, 나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집을 돌보듯, 정원에 물을 주듯 내 몸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50대 이후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공부가 아닐까.

'50대, 내 몸이나 내가 잘 모른다'는 말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다. 오랜 세월 무시했던 몸의 언어를 이제야 듣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몸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는 몸의 작은 신호를 귀 기울여 듣고, 삶의 리듬을 몸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 그것이 50대 이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기회다.

◆ 김 식 수필가 약력

現 칼럼니스트 활동
2011년 산문집 <난향 바라기> 출간
2007~2018년 건설 홍보실 근무
2004년 <시사문단> 수필 등단
1996~2007년 신문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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