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 ③] 신나오시마미술관, 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무대
[나오시마 ③] 신나오시마미술관, 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무대
  • 조용식 기자
  • 승인 2026.10.29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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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개관한 안도 다다오의 열 번째 예술 건축…나오시마의 새로운 변화
무라카미 다카시·서도호·차이궈창의 작품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질문을 만나다
명상과 치유를 넘어,동시대 사회와 역사를 마주하는 예술섬의 진화
신나오시마미술관 전시실에 설치된 중국 출신 작가 차이궈창의 대형 설치작품 《Head On》(2006). 99마리의 늑대 무리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벽을 향해 맹렬하게 질주하다 부딪혀 떨어지는 모습이 집단의 맹목적 추종에 대한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사진=조용식 기자
신나오시마미술관 전시실에 설치된 중국 출신 작가 차이궈창의 대형 설치작품 《Head On》(2006). 99마리의 늑대 무리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벽을 향해 맹렬하게 질주하다 부딪혀 떨어지는 모습이 집단의 맹목적 추종에 대한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사진=조용식 기자

[파이낸셜리뷰=조용식 기자] 일본 나오시마의 혼무라 마을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단정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숲과 마주한다. 건물은 결코 주변의 나무보다 높이 솟아오르지 않는다. 비탈진 지형을 따라 이어지는 긴 진입로와 낮은 벽, 건물 뒤로 안은 숲이 거스름 없이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안도 다다오, 열 번째 건축에 담은 변화

2025년 5월 31일 개관한 신나오시마미술관(Naoshima New Museum of Art)이다. 안도 다다오가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에 설계한 열 번째 예술 건축으로, 지상 1층과 지하 2층에 걸쳐 아시아 현대미술의 굵직한 질문들을 전시한다.

언덕 지형을 자연스럽게 살려 조성된 신나오시마미술관의 진입로. 안도 다다오는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외벽에 혼무라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돌담 질감을 결합해, 미술관이 숲과 마을의 풍경 속에 부드럽게 스며들도록 설계했다. /사진=조용식 기자
언덕 지형을 자연스럽게 살려 조성된 신나오시마미술관의 진입로. 안도 다다오는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외벽에 혼무라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돌담 질감을 결합해, 미술관이 숲과 마을의 풍경 속에 부드럽게 스며들도록 설계했다. /사진=조용식 기자
2025년 5월 문을 연 신나오시마미술관(Naoshima New Museum of Art)의 노출 콘크리트 외벽 현판. 기존 미술관들이 자연 속 명상에 집중했다면, 이곳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치열한 담론을 끌어안은 예술섬의 새로운 심장이다. /사진=조용식 기자
2025년 5월 문을 연 신나오시마미술관(Naoshima New Museum of Art)의 노출 콘크리트 외벽 현판. 기존 미술관들이 자연 속 명상에 집중했다면, 이곳은 아시아 현대미술의 치열한 담론을 끌어안은 예술섬의 새로운 심장이다. /사진=조용식 기자

지추미술관이 제한된 작품과 극적인 자연광을 통해 개인의 감각을 되돌아보게 했다면, 신나오시마미술관은 현대사회와 역사, 집단과 개인, 기억과 이주라는 묵직한 화두를 전시장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미술관은 개관 이후 전시 내용을 부분적으로 교체하며, 일본뿐 아니라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 작가들의 시각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관람객에게는 나오시마를 다시 찾아야 할 또 하나의 강력한 이유가 생긴 셈이다.

미술관 입구로 이어지는 길,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안도 다다오 특유의 노출콘크리트다. 그러나 건축의 표정은 지추미술관과 확연히 다르다.

건물 대부분을 지하에 완전히 숨겼던 과거와 달리, 신나오시마미술관은 주변 마을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외관에는 나오시마 혼무라 마을 특유의 검은 목조 외벽을 연상시키는 마감재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돌담이 사용됐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의 건축적 특징을 현대미술관의 뼈대에 이식한 것이다.

신나오시마미술관 내부의 거대한 계단실 전경. 안도 다다오 건축의 상징인 묵직한 노출 콘크리트 사이로 날카롭게 잘린 천창을 내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이 어두운 지하 전시실을 향해 극적인 공간감을 연출한다. /사진=조용식 기자
신나오시마미술관 내부의 거대한 계단실 전경. 안도 다다오 건축의 상징인 묵직한 노출 콘크리트 사이로 날카롭게 잘린 천창을 내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이 어두운 지하 전시실을 향해 극적인 공간감을 연출한다. /사진=조용식 기자

내부로 들어서면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이 관람객을 지하 전시실로 이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바깥 풍경은 차단되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네 개의 거대한 전시실이 나타난다. 반대로 지상 1층의 카페 공간에서는 세토내해와 데시마 방향의 평온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건축은 작품을 품는 단단한 그릇인 동시에, 나오시마의 과거(마을)와 현재(아시아 현대미술)를 잇는 정교한 통로로 기능한다.

무라카미 다카시, 옛 교토에 현대의 꽃을 피우다

전시실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첫 번째 작품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형 회화다. 벽면을 길게 채운 금빛 화면 위로 옛 교토의 화려한 사찰과 거리, 사람들의 부산한 일상이 빈틈없이 펼쳐진다.

전시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형 회화 작품을 유심히 감상하는 관람객들. 과거 교토의 풍경을 기록한 일본 전통 풍속화 《라쿠추라쿠가이즈(洛中洛外図)》 양식을 빌려 화려한 금빛으로 묘사한 대작이다. /사진=조용식 기자
전시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무라카미 다카시의 대형 회화 작품을 유심히 감상하는 관람객들. 과거 교토의 풍경을 기록한 일본 전통 풍속화 《라쿠추라쿠가이즈(洛中洛外図)》 양식을 빌려 화려한 금빛으로 묘사한 대작이다. /사진=조용식 기자
무라카미 다카시 회화의 세부 묘사. 고전적인 복장을 한 인물들이 오가는 옛 교토의 전통적인 거리 풍경 속에 작가 특유의 현대적이고 만화적인 꽃 캐릭터가 천연덕스럽게 섞여 있어 낯설고도 유쾌한 파격을 선사한다. /사진=조용식 기자
무라카미 다카시 회화의 세부 묘사. 고전적인 복장을 한 인물들이 오가는 옛 교토의 전통적인 거리 풍경 속에 작가 특유의 현대적이고 만화적인 꽃 캐릭터가 천연덕스럽게 섞여 있어 낯설고도 유쾌한 파격을 선사한다. /사진=조용식 기자

이 작품은 과거 교토의 풍경을 밀도 있게 기록한 일본 전통 회화 《라쿠추라쿠가이즈(洛中洛外図)》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작이다. 그러나 캔버스 가까이 다가가면 낯선 파격이 등장한다. 옛 건축물 사이로 무라카미 특유의 만화적인 캐릭터들이 활짝 웃고 있다.

고전적인 풍경과 어울리지 않을 법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전통의 색채 속에 절묘하게 스며든다. 과거의 형식을 빌려 현대 대중문화의 유전자를 각인시킨 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은 물러서서 거대한 도시를 조망하다가도 이내 바짝 다가서서 만화적 요소를 찾는 낯선 쾌감을 경험한다.

서도호의 집, 사람이 떠난 공간에는 무엇이 남는가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현재 한국에서도 성황리에 전시가 진행 중이어서 우리에게 더욱 반가운 한국 출신 작가 서도호의 설치작업을 마주하게 된다. 연한 청록색, 노란색, 분홍색의 반투명한 천으로 지어진 집과 복도의 구조물이 전시실 안에 연속적으로 서 있다.

한국 출신 작가 서도호의 설치작품 'Hub' 연작. 청록색, 분홍색, 노란색의 반투명한 천으로 지어진 정교한 문과 복도 구조물을 관람객이 직접 통과하며 개인의 이주와 기억의 층위를 몸소 감각하게 된다. /사진=조용식 기자
한국 출신 작가 서도호의 설치작품 'Hub' 연작. 청록색, 분홍색, 노란색의 반투명한 천으로 지어진 정교한 문과 복도 구조물을 관람객이 직접 통과하며 개인의 이주와 기억의 층위를 몸소 감각하게 된다. /사진=조용식 기자
신나오시마미술관에 설치된 서도호 작가의 'Hub' 연작 천장 세부 묘사. 얇고 반투명한 노란색 직물 너머로 미술관의 천창 빛이 은은하게 투과되며, 공간을 나누면서도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 몽환적인 건축적 경험을 선사한다. /사진=조용식 기자
서도호 작가의 'Hub' 연작 내부에 설치된 반투명한 벽걸이 전화기 모형. 작가가 세계 각지에서 머물렀던 과거의 거주 공간 속 사물들을 실물 크기의 얇은 천으로 꿰매어 정교하게 재현함으로써, 이주와 기억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시각화했다. /사진=조용식 기자

서도호는 집과 이주, 기억과 정체성을 오랫동안 탐구해 온 작가다. 신나오시마미술관에 설치된 8점의 'Hub(허브)' 연작은 작가가 서울, 뉴욕, 런던, 베를린 등 세계 각지에서 머물렀던 공간들과 나오시마의 어느 주택 복도를 하나로 연결해 낸 얇고 정교한 천 구조물이다.

관람객은 이 반투명한 천의 공간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여러 겹의 문을 차례로 통과하다 보면, 끊임없이 장소를 이동하면서도 과거의 공간적 기억을 고스란히 입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주 본능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박영신 도슨트는 "이곳의 벽은 공간을 나누지만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에 머물렀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투명하게 겹쳐 보이는 경험이죠. 외부에서 조형물로만 바라보지 말고, 겹겹의 문을 직접 통과하며 스스로가 가진 이주와 기억의 감각을 일깨워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차이궈창, 99마리 늑대는 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가

중국 출신 작가 차이궈창의 《Head On》(2006)은 신나오시마미술관에서 가장 압도적이면서도 관람객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서늘하고 무거운 감정을 남기는 작품이다.

신나오시마미술관에 설치된 차이궈창의 대형 조형물 《Head On》. 무리를 지어 한 방향으로 거침없이 질주하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늑대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공간을 압도한다. /사진=조용식 기자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르는 늑대 무리의 세부 묘사. 정교하게 박제된 털의 질감과 입을 벌린 매서운 표정에서 맹목적인 돌진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진=조용식 기자
앞선 무리의 궤적을 의심 없이 뒤따라 허공으로 도약하는 늑대들. 집단적 행동 속에 숨겨진 맹종의 위험성과 맹목성을 서늘하게 경고하는 듯하다. /사진=조용식 기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벽에 거세게 부딪혀 바닥으로 추락하며 뒤엉킨 늑대들의 처참한 모습. 인간 사회가 반복해 온 역사적 실패와 이데올로기적 단절을 적나라하게 은유한다. /사진=조용식 기자
차이궈창의 《Head On》 전체 전경.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돌진하다 장벽에 부딪혀 추락하고, 다시 무리의 꽁무니를 쫓아 질주를 반복하는 99마리 늑대의 끝없는 순환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조용식 기자
늑대 조형물과 함께 나란히 전시된 차이궈창의 대형 화약 드로잉 작품. 캔버스 위에서 화약을 폭발시켜 남긴 거칠고 강렬한 흔적이 늑대들의 폭발적인 질주 에너지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사진=조용식 기자

넓은 전시실에 99마리의 늑대 무리가 맹렬한 기세로 허공을 가르며 질주한다.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며 도약한 늑대들은 점차 고도를 높이며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지만, 그 폭발적인 에너지가 향하는 끝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벽이 버티고 있다. 늑대들은 주저 없이 벽에 부딪혀 곤두박질치면서도, 뒤따르는 무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용돌이치듯 질주와 충돌을 끝없이 반복한다.

현장에 비치된 도록에 따르면, 늑대들이 부딪히는 이 투명한 벽은 사람과 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는 무형의 이데올로기적·문화적 장벽을 상징한다.

강한 연대감을 본능으로 삼는 늑대 무리의 맹목적인 돌진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향한 인류의 위험한 맹종과 역사 속에서 끔찍한 실패를 되풀이하는 우리의 씁쓸한 자화상을 직설적으로 찌른다. 관람객은 늑대의 궤적을 따라 걸으며 생동감 넘치는 역동성에 감탄하다가, 이내 그 궤적이 박살 나는 파국의 끝에서 형언할 수 없는 묵직한 질문과 경고를 짊어지게 된다.

아시아 현대미술이 던지는 또 다른 질문들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시선도 날카롭다. 인도네시아 작가 헤리 도노는 전통 인형극을 차용해 기괴한 천사 형상의 조형물을 공중에 매달아 놓았다. 해학적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절의 복잡한 정치적 굴절이 담겨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 작가 헤리 도노(Heri Dono)의 10폭짜리 대형 연작 회화 《The Odyssey of Heridonology》(도록 촬영). 지난 수십 년간 작가가 탐구해 온 조각, 설치, 퍼포먼스의 요소들을 바다와 산, 숲이라는 자연 풍경 속에 기괴하고 해학적으로 배치하여, 인도네시아의 현대사와 사회적 억압을 날카롭게 풍자한 대작이다. /사진=조용식 기자
회화 작품 앞 전시실 천장에 매달려 비행하는 헤리 도노의 키네틱 조형물 《Angels Fallen from the Sky》(도록 촬영). 기계 장치가 결합된 우스꽝스러운 천사들은 미국 만화 '플래시 고든(Flash Gordon)'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이들이 품고 있는 어뢰는 힌두교 비슈누 신의 무기인 차크라(영감과 담론)를 상징하여 억압된 시대에 상상하는 자유가 지닌 힘을 역설한다. /사진=조용식 기자
전시실 한편에서 차이궈창의 비디오 아트 작품을 숨죽여 감상 중인 관람객. 건물을 뒤덮는 폭발과 화려한 불꽃이 교차하는 영상은 파괴와 아름다움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사진=조용식 기자
헤리 도노 작가가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기를 모티브로 삼은 비디오 아트 작품. 건물이 붉은 화염에 휩싸여 폭발하는 파괴적인 장면이 두 개의 스크린에 연속적으로 상영되며, 관람객에게 폭력과 사회적 억압에 대한 시각적인 충격과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사진=조용식 기자

태국 작가 판나판 요드마니의 작품은 파괴된 콘크리트 잔해와 불교적 조형물이 뒤엉킨 형태다. 앙상한 철근과 화려한 전통 문양이 결합한 폐허의 풍경은 개발과 파괴, 세속과 종교가 충돌하며 순환하는 아시아의 카르마를 묵시록처럼 묘사한다.

김대동 황등아트앤컬처 총감독은 "나오시마가 문화예술 관광도시 재생의 교과서로 불리는 진짜 이유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딴 자연 속에 고립되지 않고 주민들의 삶터인 혼무라 마을 언덕에 새 미술관을 지어 일상과의 접점을 넓혔죠. 게다가 서구권 중심의 현대미술을 넘어 동시대 아시아의 치열한 사회적 담론까지 끌어안았습니다. 문화가 어떻게 인간의 삶과 지역을 끊임없이 진화시키는지, 이 미술관이 다시 한번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하 전시실의 치열한 담론들을 뒤로하고 지상 1층 카페로 올라오면 다시금 고요한 세토내해의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무라카미 다카시가 비틀어 낸 전통, 서도호가 투영한 이주의 기억, 차이궈창이 경고한 집단의 맹목성까지. 이 작품들은 결코 정답을 쥐여주지 않는다. 대신 여행자 스스로가 자신과 사회를 향해 날 선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아름다운 자연을 걷다 불현듯 동시대의 묵직한 화두를 마주하게 되는 곳. 신나오시마미술관은 예술섬 나오시마가 멈춰 있지 않고 또 다른 차원으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가장 찬란하고 도발적인 선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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