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 상간소송 재판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40대 중반의 고씨가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말투도 차분했던 그는 어렵게 입을 뗐다. 출장을 하루 일찍 마치고 귀가했는데 아내는 없고, 거실 소파에 화면이 켜진 아내의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고 했다. 이름 대신 하트 이모티콘으로 저장된 번호에서 온 메시지였다. 잘못 온 것이라 생각하고 대화창을 열자 몇 달 치 대화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겨우 꺼낸 말은 "저에게 무엇이 부족했던 걸까요"였다.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된 이들이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필자는 이 질문에 나름의 답을 갖게 되었다.
외로웠다는 말
10년 가까이 상간소송을 수행하며 원고와 피고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된다. 사람도 상황도 다른데 그들의 말은 묘하게 비슷하다. 가장 흔한 말이 "그냥 외로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핑계로 들렸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단순한 핑계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생활이 길어지면 배우자는 설레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 곧 일상이 된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어떤 이들은 그 익숙함을 사랑이 끝난 신호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외도가 발각된 한 배우자는 "집에 와도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했지만, 그 시기 의뢰인은 아이 셋을 거의 혼자 돌보며 생활비까지 맞추느라 경황이 없었다. 서로 여유가 없던 시기였고, 그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식이 외도로 이어진 것이다. 외로움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느냐다.
이미 남남이었다는 말
부부관계가 오래 소원해져 관계가 이미 끝났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 감정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법적으로는 혼인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여전히 서로에 대한 의무가 존재한다. 부부관계가 힘들다면 대화를 더 시도하거나 부부상담을 받을 수 있고, 이혼이라는 선택지도 있다. 그 과정 없이 외도로 이어졌을 때 법적인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말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처음에는 식사 한 번, 그다음에는 퇴근길 술 한잔이었는데 어느 순간 선을 넘는다. 본인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 한 소송에서 피고 여성은 "그저 힘들다는 말을 들어 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시작된 관계가 시간이 흐르며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의 의도와 무관하게 감정이 쌓이는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줬다는 말
이 말을 들을 때 가장 마음이 복잡하다. 외도 상대와의 관계에는 직장 스트레스도, 육아 갈등도, 돈 문제도 없다. 서로 여유 있는 모습만 보게 되니 그것이 깊은 이해처럼 느껴진다. 반면 배우자는 그 모든 현실을 함께 감당하는 사람이고, 그 무게 속에서 늘 다정하기란 쉽지 않다. 두 관계를 같은 선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육아가 한창이거나 일이 힘든 시기에 아무 부담 없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마음이 기울기 쉬운 것은 어쩌면 인간적인 반응이다. 다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결국 다른 결과를 만든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필자는 고씨에게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외도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그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감싸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심리를 알면 적어도 이것이 내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분명히 받아들일 수 있다. 외도는 민사상 불법행위다. 배우자 있는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상대방에게는 법적 책임이 인정되고, 피해 당사자는 상간소송을 통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 절차에 앞서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을 먼저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후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외도로 상처받았다면 혼자 괴로워하며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광남 변호사 약력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졸업
법률사무소 도헌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이혼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법전문변호사
경찰청 주관 학대예방경찰관 전문화교육 강사
양주동두천교육지원청 학교폭력심의위원회 위원
드론작전사령부 정보공개 심의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