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여행기⑦] 왕터 공주 공산성
[김진혁 여행기⑦] 왕터 공주 공산성
  • 김진혁
  • 승인 2025.02.17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웅진 시대 방어성
금강과 공산의 자연지형 이용한
천연의 요새이자 왕궁지

[파이낸셜리뷰] 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은 웅진도읍기(475~538) 백제의 왕궁이 있었던 산성으로 금강과 공산의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축조됐다.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로 능선과 계곡을 따라 성벽을 쌓은 포곡형 방어성이자 왕성이었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서남쪽은 가파른 성벽으로 방어에 유리한 이점을 지닌다. 공산성은 산성 안에 왕궁을 가지고 있으며 발굴조사 시 왕궁지, 왕궁부속시설지, 백제 시대의 토성 등이 확인되었다. 백제 시대 토성 735m, 신라시대 석성 1925m, 총둘레 2,660m의 포곡형 산성이다.

공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을 훈련시켰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서 인조는 공주로 파천을 하였다. 공산성 내의 가장 높은 곳에서 있는 쌍수정에 머물러 금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반란 진압 소식을 기다렸다. 인조는 7일 동안 공주에서 머물렀다.

공산 이름의 유래는 강 건너 북쪽에서 보면 마치 귀인 공자와 같다 하여 공산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공주의 옛 명칭 웅진(熊津)은 곰나루(고마나루)에서 유래된 것처럼 공산도 원래는 곰산이란 말도 있다. 성안에는 왕궁지와 연못 2개소 및 임류각·쌍수정·명국삼장비·광복루·진남루·동문루·금서루·영은사·광북루·만하루 등 수많은 신라, 고려, 조선 유적이 남아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