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역사] 부의 기원
[부의 역사] 부의 기원
  • 김진혁
  • 승인 2023.09.26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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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삶의 무기가 될 때

부의 선물은 선택의 자유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지만 아무나 되지 못한다

“인생은 오직 뒤를 돌아보아야만 이해가 된다”_키르케고르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과 격동하는 세계사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부가 삶의 무기가 되어 힘겹게 살아간다. 힘든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지나간 세월을 담고, 다가올 날들을 위한 역사의 통찰에 길을 물었으면 한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토머스 칼라일의 말처럼 “역사는 모든 과학의 기초이며 인간 정신의 최초 산물이다.”역사는 삶의 교과서 역할과 길을 비춰주는 등대와 같지 않을까?

현대인들은 기술 개발을 통한 진화로 원시인보다 수명도 길고 건장하며, 경제적 부를 누리고 있다. 원시인들은 이윤추구라는 개념을 인지하지 못했다.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귀족(혹은 양반)은 상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경제를 천시했다. 고려 후기에 유교가 전래되면서부터 우리나라 신분제인 귀천은 선비·농민·공장(工匠)·상인 등의 순으로 되었다. 18세기 기술혁신과 사회구조의 변혁인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벌어지면서 이윤추구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지구를 뒤덮기 시작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지만 아무나 부자가 되기 어렵다.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막연하게 생각만 해서는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부자의 반열에 진입할 수 없다.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부(富)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갈파했다. 플라톤은 욕망이란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타자(Autre)의 욕망이면서 제어하기 힘들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이미 가진 재물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 실제 소유의 크기에 관계없이 부자가 될 수 있다. 루소는 부자로 되는 길은 딱 두 가지로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일이다.

여기서 부란 재정적 부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부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부의 가치는 소비에 있지 않고 자유와 독립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유하다는 (부)富를 파자해보면 집 안에 宀집(면)과 술이 가득 담긴 항아리 가득할(복)畐가 있는 모양이다.

진정한 부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할 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선택이다(Wealth means freedon to choose). 농경시대 이전에는 이윤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은채 수렵, 채집이 인류의 유일한 식량확보 수단이었다.

하지만 1만 2000년 전 부터의 농경시대에는 정착하면서 노동에 시달리고 빈부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인류의 역사는 부의 이동에 따른 과정으로 전개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파멸이 되거나 혹은 지속 발전의 계기가 된다.

금융과 인간의 관계도 국가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가가 안정되고 힘이 있다면 화폐가 경제의 동맥이 되어 사회적 부를 끌어내지만, 국가가 혼란하고 공평하지 못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면 금융 제도 역시 부정한 권력에 장악돼 국민의 부를 약탈하는 도구가 된다.

따라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부의 흐름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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