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역사] 기독교 공인은 재정난 때문에
[부의 역사] 기독교 공인은 재정난 때문에
  • 김진혁
  • 승인 2025.04.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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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현상 배경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명분은
기독교인의 십일조를 세금과 연계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 세계사는 겉으로 보기엔 종교, 문화, 계급 투쟁 등 무수히 많은 것에 의해 움직였다. 그러나 사회적 공감대를 자아낸 뚜렷한 명분 뒤에는 ‘돈’이 존재한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이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재정이 악화되어 국가 통치마저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수익의 10분의 1을 헌금으로 바치는 십일조 전통이 있어서 기독교와 국가를 연결시킴으로써‘기독교인이라면 국가에 세금을 제대로 내라’고 할 수 있고 기독교인으로서도 신앙과 연결되면 세금을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세제 개혁이 성공하면서 로마제국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이후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번창하던 로마는 왜 멸망했을까? 내부적 요인은 혁신과 도전정신의 상실, 기득권 세력의 생산수단 독점, 빈부격차의 심화, 불공정사회 과도한 지대추구로 인한 혁명, 주변국 침입 등이 있다.

특히 로마는 세금 거두는 일이 숩지 않아 황제는 대신 화폐의 질을 떨어뜨리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화폐 타락이 상시화되면서 경제가 피페해지고, 로마의 변방을 지키는 용병들조차 로마의 화폐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무역은 점점 쇠퇴하고, 개방경제는 폐쇄경제로 회귀하여 지방의 봉건 영주가 지배하는 장원 중심의 경제로 전락하게 되었다.

로마가 기독교에 대한 핍박을 멈추고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데는 교회세 상납을 통해 국가 재정을 개선하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의도가 있었다. 또한 노예 해방을 이끈 남북 전쟁도 사실 흑인 인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한 것이기보단 값싼 노동력인력인 흑인이 백인만큼 급여를 받게 되면 급여 지출이 증가하며 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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