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香(심향 강상빈 박사)의 생애와 사상 17편
心香(심향 강상빈 박사)의 생애와 사상 17편
  • 강상빈 박사
  • 승인 2020.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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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딸 유선의 입상 소식

나는 참으로 회사 생활에 몰두하여 집안의 내용을 잘 모르고 살아간 것 같다. 나의 기억이 전혀 없던 내용들이 구산의 책을 통해 30년이나 지난 뒤 뒤늦게 알게 되었다.

다음은 우리 딸(유선)이 입상한 내용이 담긴 소년한국일보기사(1987.12.30.)이다.

⓵<소년 한국 글짓기 상 입상작품>

산문부 가작

제목 : “강아지“ 서울 월촌국민학교 5학년 강유선

“우리 집 강아지 어제 샀다. 넌 강아지도 없지?” 내 친한 친구인 윤희가 약을 올리니 더욱 그 친구가 미워졌다. 윤희는 계속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너 우리 집에 가서 강아지 구경 해, 벌써 이름 지었어. ‘체리’야, 귀여운 이름이지? 너무 체리를 좋아해서 지어 준 이름이야.”

“알았어, 너 너무 야비하다. 어쩜 너 약 올리는데 명수구나? 흥 너 혼자 실컷 귀여워해 주렴.” 나는 괜히 약이 올라 화를 냈다. “왜 그래? 난 강아지 보여주려고 했는데 -----” “야 화내지 마” 윤희는 당황하여 나를 달랬다. “필요 없어,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나도 그까지 개 한 마리 사면 돼,” 윤희의 달램도 뿌리쳤다. 강아지를 보고 싶기는 했지만 차마 그럴 수 는 없었다. ‘괜히 안 간다고 그랬네, 귀여울 것 같은데 ----’ 나는 후회가 막심했다. 전에 키우던 바둑이가 생각났다. 그 땐 겁이 많아서 바둑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와도 무서워서 도망을 갔다. 그 때 바둑이를 무서워하지 말고 친근히 대해 줄 걸. 지금이라도 강아지를 한 마리 사서 키워 볼까 싶었다. “어머니, 우리도 강아지 키워요.”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니? 어머니도 키우고 싶은데 아파트라서 키우기 힘들 거야.” “어유 참, 그럼.” “무슨 소리니?” “아니어요.” 나는 깜작 놀랐다. 조그맣게 말했는데 어머니 귀에 들렸으니 말이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 ’ 누굴까? 하고 생각을 하여 수화기를 들자 뜻밖에도 윤희였다. “왜 또 개 자랑이니?” 나는 냉정히 말했다. “쌀쌀 맞게 애기하지 마. 나 개 다시 팔았어. 오늘 학교 일로 마음이 아팠어. 이제 화 내지 마, 그럼 안녕.” “여보세요, 얘 얘,”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 때문에 그 귀여운 강아지를 ----- 어떻게, 그럼 내 체면이 뭐야?” 내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 바삐 윤희에게 속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이얼을 눌렀다.

“따르릉 따르릉!”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 수 없네, 내일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 하고 생각을 하니 가뿐해졌다.

<작품 평>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문장이 경쾌하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어가고 있다. 단순한 글감으로 이만한 길이의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이것으로 지은이의 글 솜씨가 짐작된다. 친구가 새암을 낸다고 해서 귀여운 강아지를 파는 일은 좀처럼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점이 이해 될 수 있도록 몇 마디의 말을 곁들여야겠다.

⓶ 제목 : <유선이는 글 재주를 살려라!> 88.4.6 자 <구산육영보>에 실린 글이다.(구봉산인의 생애와 사상 19 “뿌리”편 115 p)

“소년한국일보” 88.3.19(토요일)판에 “소년 한국 글짓기 상” 입상작품이 실렸는데, ‘운문부’ 가작 ‘새학기’ 서울 월촌 국민학교 6학년 강유선 이었다.

유선이는 그전에도 이 “소년한국 글짓기 상”의 산문부 가작으로 뽑힌 바 있다. 우리 집안은 고려조 국자박사를 지내신 강계용 할아버지를 중시조로 모시고, 그 후손이 글로써 칭송을 받아 왔다. 7세 강추백은 정당문학으로 명성이 떨쳤고, 그의 넷째 아들 석덕공에게는 강희안, 강희맹 두 형제를 두었는데, 강희안은 당대 삼색로서 유명했고, 구산에게 20대가조가 되는 강희맹 문량공께서는 그 글이 너무 훌륭하여 일본의 교과서에도 그 명문이 인용되었다. 가까이는 구산의 조부 오운 강익희 선생께서는 훈장으로써 글 잘하시고 고귀한 인격과 덕망을 갖추신 분으로 향리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셨다. 그리고 향리에 오운 학당을 창설하시고, 신학이 보급되고 일반화 될 때까지 후손들의 육영과 교육에 진력하셨다. 그 후손들은 대학교 학장, 대학원장, 교수, 중고등하교 교장, 교감, 주임교사, 초등학교교장, 교감 등으로 한국의 교육계에 지대한 공적을 남기고 귀중한 공헌을 한 인물로서 세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손녀 유선이가 글 재주를 살려 구산 조상의 얼을 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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