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香(심향 강상빈 박사)의 생애와 사상 22편
心香(심향 강상빈 박사)의 생애와 사상 22편
  • 강상빈 박사
  • 승인 2020.05.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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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코스타트랜스

3년간의 선경그룹 임원 생활을 마치고 1995년 10월 1일부로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국제복합운송업체인 “코스타트랜스(Co-Star Trans)를 창립하여 대표이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회사 운영 기본 방침을 세웠다. 회사 수익의 3분의 1은 직원 복지를 위해, 또 3분의 1은 회사 발전을 위해, 나머지 3분의 1은 사회복지를 위해 쓰기로 하였다. 여기서 사회복지는 주로 농어촌 복지를 위한 것이었다. 난 5년간 열심히 일한 후에는 농촌으로 돌아 갈 것이라고 직원들과 약조를 하였다. 회사 업무를 확장하기 위해 수출입화물 국내운송 전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와 MOU를 체결하고 상호 영업력을 확대였다. 상호 시너지 효과에 힘입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갔다. 또한 시간적 여유도 생기면서 농촌 살리기 운동에 필요한 각종 교육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여한 교육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창업농장주교육(농협세계지도자 연수원) 수료 1995. 11. 30

기독교국제복지대학원(1996.3 -1998.2)

친환경농법(농협세계지도자 연수원) 제3기 수료 1996. 8. 21

에너지절약농법(농협세계지도자 연수원) 1998. 7.28- 31

가나안 농군학교 단기과정 436기 수료 1998. 8. 20

귀농교육(춘천 YMCA) 영농교육 수료 1998. 9.7-12(3기)

한국농림수산정보센타 전문정보교육과정 복합영농전문반 1998. 9.28- 10.1

자연농업기본연찬(한국자연농업협회) 1998. 11.14(100기)

자연농업 전문연찬(한국자연농업협회) 1999. 2. 11(21기)

흙집학교(흙처럼 아쉬람) : 6박7일 흙집짓기, 2박3일 구들장 교육

생협해외 연수(일본생협연합회), 동경, 후쿠오카, 규슈 3회(2001, 2003, 2005)

서울대학교 생면농업대학원 지역사회 개발 전공(2000.3 -- 2002.2 교육학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2003.3-2006. 8)

해외유기농연수(호주 뉴질랜드 2010)

해외 친환경유기농 연수(독일, 스위스, 이태리2014)

해외 농촌 체험(일본 야먀가다현, 1996)

이스라엘 총리 초청 세계농업박람회 참관(1997)

세계농촌사회학회 학슬대회 참가(노르웨이, 트론하임, 2005, 11)

친환경급식지도자교육(학교급식네트워크 2006)

순리치유 기본 교육(1996.10), 심화과정(2013,8), 최고연수과정(2014.1) 수료.

모금과 나눔 기본 교육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2013)

⑥ 기독교 국제복지 대학원

1996년 1월 어느 날 우연히 일간지 하단 광고란에 실린 기독교국제복지 대학원 2년 과정 모집 안내를 보게 되었다. 아동복지, 여성복지, 노인복지, 건강복지, 알코올 중독자 복지, 윤락녀복지, 사회복지, 도시복지 등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평소 기도제목과 일치한 것으로 생각되어 지원을 하게 되었다, 매주 월요일 오후1시부터 저녁 9시 까지 각종 복자에 관한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현대화 과정 속에서 인구가 도시로 몰려 도시화가 집중 되어가면서 농촌은 붕괴되어 가고 있고, 도시는 각종 사회악과 빈부의 격차로 혼잡하고 어려운 부류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국민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 하게 살아 갈 수 있을 가? 내가 하여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나에세 원하시는 삶은 무엇일가? 를 묵상하며 대학원과정을 다니게 되었다. 그 당시 전철 역 및 전철 안에는 찬송가 테이프를 틀며 구걸하는 맹인, 장애인, 걸인 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을 볼 때 마다 적선을 하곤 하였다, 특히 매주 얼요일 대학원을 나가는 날은 반드시 몇 명의 단골 걸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강의 중 한 연구생이 걸인에게 지속적으로 적선하는 것이 좋은지? 이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견해와 그들 배후에 상업적인 조작이 있어 문제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 후 자세히 살펴보니 계속 적선은 오히려 검은 손의 세력을 키워주는 결과만을 초래하는 것이라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에 대해 대학원 총장이신 목사님은 어떠한 경우애도 자비를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계속 적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나 그 후 나는 자주 만나는 직업적인 걸인들에게 더 이상 적선을 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악의 세력을 키우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년간의 수업을 정리하면서 졸업논문을 쓰게 되었다. 논문은 도시시역, 건강사역 중 전문 분야에 대해 고찰하여야 하는데, 나는 전공과목이 없는 농촌복지에 대해 포괄적으로 쓰고 싶어, 지도교수에게 건강사역 도시사역 등 모든 복지를 함께 아우르는 농촌살리기 복지에 관한 연구 논문을 쓰면 않되냐? 고 건의하였다. 너무 좋다고 하신다. 그 동안 각종 영농교육과 다양한 농촌 체험을 통해 농촌의 어려운 실정을 개선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 논문을 제출하게 되었다.

이를 본 총장은 나에게 책으로 발간하여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이에 1998. 8월 나의 50주년 생일을 맞이하기 한 달 전 ‘돌아오는 복지 농촌, 참여하는 도시인들’이라는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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