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4월 17일 그라민 은행
[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4월 17일 그라민 은행
  • 파이낸셜리뷰
  • 승인 2019.04.1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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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을 ‘대항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유누스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거슬러 흐르는 물이에요. 다른 은행들은 위를 보지만 우리를 아래를 봐요. 다른 은행들은 당신보고 자기들에게 오라고 하지요. 우리는 직접 채무자들에게 갑니다. 다른 은행들은 당신에게 소유권을 요구해요. 우리는 그것을 잊으라고 합니다. 다른 은행들은 당신에게 법률 문서에 서명하라고 하지요. 우리는 그러지 않아요. 그러면서 우리는 수백만 달러를 다룹니다.”

-데이비드 본스타인DAVID BORNSTEIN의 ‘그라민은행 이야기’-

[파이낸셜리뷰] 꿈은 단순히 미래의 성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라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을 제공해 줍니다. 이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는 ‘그라민(Grameen)’이라는 은행은 27달러로 시작했지만 전국에 1,175개의 지점을 두게 되었고 240만 명에게 1,600억 다카(약 3조 3600억 원)를 대출해 주었으며 직원 수도 12,000여 명의 대형은행으로 성장했습니다.

“은행성장의 힘은 다름 아닌 유누스 은행장이 주어진 환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꿈을 현실화 시켰기 때문이다. 지금의 가난은 자선으로 퇴치되지 않는다. 가난은 나태함이 아니라,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 일로 유누스는 200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미국, 쿠바 피그만 작전 실패 ( 1961년 )

피그만(The Bay of Pigs) 침공은 1961년 4월 16일에 쿠바 혁명정권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국가선언을 하자 다음날인 4월 17일 미 중앙정보국(CIA)이 주축이 돼 쿠바 망명자 1500명으로 '2506 공격여단'을 창설해 쿠바를 침공한 사건.

그러나 미 공군의 막판 지원 부족으로 대파한 사건, 1백 여 명이 숨지고 1천 여 명은 체포됐으며 카스트로와 미국 간의 대립은 이때부터 본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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