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6월 26일 자존감
[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6월 26일 자존감
  • 파이낸셜리뷰
  • 승인 2019.06.2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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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자유를 향한 그의 지속적인 운동은 근원적인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삶은 오직 인간이 자유 속에서 살아갈 때 그리고 사회 속에서 특히나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기본적 권리가 제한되어 있거나 결여되어 있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유를 확고히 세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폴 담, ‘덴마크의 아버지 그룬트비 - 위대한 국가 지도자의 모범’ 중에서 -

[파이낸셜리뷰] 행복지수가 높은 덴마크의 행복나라 비법이 궁금하다. 역사적으로 덴마크는 처음부터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었다. 1년에 해가 50일 밖에 뜨지 않는 나라, 전쟁에 패해 지금의 노르웨이 땅을 잃었고 1864년에는 국토의 30%를 독일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남은 땅은 척박한 황무지. 사람들은 술과 노름, 다툼과 폭력으로 불행한 날들을 보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온갖 외세 침략과 풍파 속에서도 덴마크 재건에 가장 중요한 초석을 다진 인물은 니콜라이 그룬트비(1783~1872)다. 덴마크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목사·시인·정치가로 활동한 참교육 운동가였다.

그는 평등·자유정신을 바탕으로 교육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룬트비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농촌 마을에 작은 학교 ‘폴케호이 스콜레’를 세우고 혁신적인 교육을 시행했다. 운영방침은 첫째 모든 시험을 없앤다.

둘째 암기 위주의 교육을 철폐한다.

셋째 책과 토론으로 교육한다.

넷째 전 국민을 교육한다. 폴케호이 스콜레는 덴마크 민주주의 국민 교육 기관으로 발전시킨다.

절망의 상황에서 그룬트비는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

외쳤고 이견을 가진 사람들을 규합했다.

오늘의 역사: 독립운동가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피살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이며 목숨 건 항일민족운동의 백합 같은 지도자,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광복 후 귀국하여 모스크바 3상회의 성명을 반박하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1948년 남한만의 단독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의 결의에 반대하여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창하였다. 저서로《백범일지》가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서울 서대문 근교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安斗熙)가 쏜 권총에 의해 피살됨.

그의 평생 꿈인“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의 소원은 독립이요, 두 번째 소원은 무엇이냐 물으면, 두 번째 나의 소원도 독립이요, 세 번째 소원은 무엇이냐 물어도 내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요.”라는 말이 심금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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