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돈으로부터의 자유] 6월 10일 노블레스 오블리주
[김진혁의 돈으로부터의 자유] 6월 10일 노블레스 오블리주
  • 김진혁
  • 승인 2020.06.10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창조충동의 계발과 강화에 있다.

창조충동은 새 삶을 여는 열쇠다.

- 러셀 -

[파이낸셜리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분으로 거상 김만덕을 든다. 그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기생으로 살았지만 유통업으로 돈을 벌었고 스스로 겸손하게 살다가 전 재산을 기부해 제주도민들을 살려냈다.

정조 시대 제주도민들이 계속되는 재해로 기근에 시달렸을 때 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쌀을 구입하여 제주도민들을 살려내었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원망하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녀로서 자신이 쌓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여 임금(정조)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고, ‘의녀반수’라는 여성으로서는 최고의 벼슬을 받았다.

반면 아르헨티나 국적인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는 배 나르는 용역 일을 하면서 부를 동경했다. “나도 저들처럼 살아야 겠다”라는 꿈을 갖고 노력한 결과, 유조선 선단 규모가 우리나라 해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마리아칼라스 오페라 디바와 결혼한 후 이혼하고 케네디 재클린과 재혼했다.

한편 재클린이 하루 23억을 쓸 정도로 낭비벽이 심하자 오나시스는 결혼 후 일주일 만에 이렇게 토로했다.

“내가 실수했다. 파혼할 길이 없을까?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 이혼 절차 중 130억불을 유산으로 남길 정도의 부자였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못한 쓸쓸한 노후를 보낸 것이다.

존 스타인벡은 1939년 ‘분노의 포도’에서 대공황 시기에 농토를 빼앗기고 서부로 이주하는 소작농의 처절한 삶을 그렸다.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농부가 차압을 붙이는 집행관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이건 우리 땅이요, 여기서 태어났고 일생 동안 일했으며 여기서 죽어갔소. 그것이 바로 이 땅이 우리들의 것이라는 증명이요. 종이쪽지가 중요한 게 아니오.” 집행관이 말했다. “참으로 안된 일이지만 그건 은행이라는 괴물이 하는 짓이오.”

농부가 맞받았다. “은행도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집행관도 지지 않았다. “아니오, 은행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요. 은행은 돈과 이자를 먹고 살지요. 먹을 돈이나 이자가 없으면 그냥 죽고 말아요.”

♣ 킨포크족 (kinfolk 族)

낯선 사람들과 함께 즉석 만남 등을 통해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즐기는 사람

​친척ㆍ친족을 뜻하는 킨포크(kinfolk)라는 명칭처럼 비록 낯선 사람이지만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즐기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다. 이른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이다.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시작된 한 작은 모임이 시초다. 농부·디자이너·사진가·작가·화가 등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요리를 하고, 식사를 즐긴 이야기를 잡지로 엮어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