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6월 7일 리더의 역할
[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6월 7일 리더의 역할
  • 파이낸셜리뷰
  • 승인 2019.06.0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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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나무가 있기를 바라고 고운 꽃을 보기 원한다면

반드시 좋은 흙이 있어야지요. 흙이 없으면 꽃도 나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꽃이나 나무보다 흙이 더 중요합니다.

- 루쉰의 ‘한 권으로 읽는 루쉰 문학 선집’ 중에서 -

[파이낸셜리뷰] 리더는 흙과 같은 존재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강점을 바탕으로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밑거름이 되어야한다. LEAD의 글자를 파자하면 이해가 쉽다. L은 아래 사람의 의견을 듣고(Listen), E는 의욕과 사기를 북돋워주면서(Encourage), A는 문제 해결을 지원하고(Assist), D는 권한은 위양해 주는(Delegate) 것이다. 즉 자기만의 브랜드와 다른 이들이 인재로 되기를 응원한다. 진정한 리더는 부하나 후임자를 얼마나 잘 키웠느냐에 달려있다.

‘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Jim. Collins)도 위대한 기업은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분야, 분명한 수익 창출 포인트가 있는 사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오늘의 역사: 후기 인상파 고갱 풀생 출생(1848-1903)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떠나 원주민의 건강한 모습을 밝고 강렬한 색채로 그렸다. 그의 과감하고 내면의 비(非)자연주의적 경향은 20세기 인상파가 출현하는 데 계기가 되었다.

고갱이 태어난 1848년은 프랑스혁명의 정치적 혼란기였다.

주식시장도 붕괴되면서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하고 주식거래인인 그의 직업도 불안하게 되자 전업 화가가 탈바꿈하였다.

화가로 살아가면서 생활이 어려워지게 되어 고독한 시간을 보낸 후 원시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타히티 파페에떼는 그의 이상과 달리 척박한 곳이었다.

고갱은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파페에떼는 식민지 지배자들과 술주정뱅이 백인들이 득실거리는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1년 동안 깊은 좌절감과 그의 가족들의 냉담으로 고갱은 다시 타히티섬으로 돌아갈 것으로 결심하였고 1895년 6월 말 프랑스를 떠나 다시 남태평양으로 향했다.

1901년 마르키즈제도의 히바오아섬으로 자리를 옮겼을 무렵 매독과 영양실조로 그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1903년 5월 8일 심장마비로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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